나는 온몸이 그닐거리고 쑤셔 잠은커녕 진드근히 누워 있을 수도 없었다. 무슨 핑계를 대고 빠져나갔던가는 기억해 낼 수 없다. 내가 다시 결혼 잔치가 끝나 갈 석공네 마당으로 달려들 었을 때, 밭마당의 모닥불은 거진 사위어 버리고 사람 하나 얼 씬하지 않고 있었다. 그러나 풍장 소리와 노랫소리는 사립 울 안에서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. 여전히 누군가가 소리 를 부르고 있었다. 멍석 너덧 닢내기만한 안마당엔 어른들이 겹겹으로 둘러서서 모두가 엉덩이를 궁싯궁싯 들썩대며, 그러 나 하나같이 군소리를 참고 눈과 얼굴로만 흥겨워하고 있었다. 누구 음성이었을까, 생전 처음 들어 본 그 구성진 가락은. 석탄 백탄이 타는데, 연기만 펑펑 나는데에…… 이 내 가 슴 타는데, 연기가 하나도 안 나는데……. 나는 키가 모자라 사람 다리만 빽빽한 쪽마루에 비비대고 올 라가 넘어다보았다. 그리고 놀랐다. 놀라지 않을 수 없던 것이 다. 한 손으로 주안상 가장자리를 두들겨 가며 앉아서 노래하 는 어른, 코와 눈이 그렇게 크고 음성 또한 굵직한 신사, 그이 는 아버지였다. 나는 가슴이 벅차올라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. 황홀하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하여 얼마를 두고 뚫어 지게 바라보았으나 분명 아버지였다. 당신으로서는 도저히 있 을 수 없는 일에 도취된 모습이기도 했다. 우선 석공네 울안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현실 같지 않았고, 노래를 하는 것도 사실일 수가 없으련만, 모든 것은 눈에 보인 그대로였다. 아버지는 안팎 동네 어느 누구네 집도 울안은 들 어가 본 적이 없는 터였다. 일가 간인 한산 이가네로서 노인을 모시는 집안이거나 당내 간의 사랑이라면 더러 출입이 있었을 따름이요, 그것도 울안에 발을 들인 일이란 한 번도 없던 터였 으니, 하물며 전에 일갓집 행랑살이를 했던 사람네 집이겠던 가. 신 서방은 덩실덩실 춤을 추었고, 아버지의 맞은편에 꿇어 앉은 석공은 연방 싱글벙글 웃어 가며 솟음솟음하는 신명을 어 쩌지 못해 답답한 표정이었다. 아버지가 노래를 마치자 요란스런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고, 신 서방이 두 손에 술잔을 받쳐 드니 석공은 주전자를 기울였 다. 아버지가 술잔을 받아 들자 신 서방은 일어서며 노래를 부 르기 시작했는데 아, 나는 그때 또 한 번 크게 놀라고 말았다. 다시 한 번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음이니 그것은 아버지가 일어서서 어깨춤을 추기 시작한 거였다.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아버지는 그렇게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. 할아버지 앞에서는 항상 무릎 꿇고 조아려 공손하기가 몸종 과 다름없었지만, 처자 앞에서는 단란하고 즐거워 웃더라도 결 코 치아를 내보인 일이 없게 근엄하되, 한내천 백사장에 강연 장이 설치되면 뜨내기 장돌뱅이까지도 전을 걷어치울 정도로 수천 군민이 모여들게 마련이었으며, 산천이 들렸다 놓인다 싶 게 불 뿜듯 웅변을 했는데, 그때마다 청중들로부터 천둥보다 더 우렁찬 환호와 박수갈채를 얻고 당신을 알던 모든 사람들한 테 선생님이란 경칭을 받았던, 저만치 멀리로 건너다 보이며 어렵기만 한 사람이었다. 어디 그럴 법이 있을 수 있단 말인 가. 남의 집 울안 출입에 노랫가락과 어깨춤……. 신기함과 경이로움을 주체하지 못해 나는 몹시 당황했지만 그러나 그런 거북스러움도 ㉠ 가셔지고 있었다. 멍석 가 장자리로 둘러서 있던 모든 사람들이 덩달아 함께 어울려 춤을 추기 시작했던 것이며, 그 속에는 작대기 막대기와 새끼 타래 를 내던진 쌍례 아배와 복산 아배, 덕산이와 조패랭이가 섞인 채 누구보다도 흥겨워 몸부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. 그 흥겨움에 감싸여 흐른 밤은 얼마나 되었을까. 모든 사람들의 배웅을 뒤에 두고 나는 아버지 뒤를 따라 집 으로 돌아오고 있었다. 아버지 그림자를 밟지 않기 위해 나는 이만큼 뒤처져 걷고 있었는데, 그림자가 너무 길다고 느껴져 불현듯 하늘을 우러르니, 달은 어느덧 자리를 거의 다 내놓아 겨우 앞치마만한 하늘을 두른 채 왕소나무 가지 틈에 머물고 있었으며, 뒷동산 솔수펑이의 부엉이만이 잠 못 들어 투덜대고 있었다. 아버지는 사랑 앞에 이르도록 헛기침 한 번 없이 여전 근엄하였고, 나는 버긋하게 지쳐 놓은 대문을 돌쩌귀 소리 안 나도록 조용히 여닫으며 들어가 이내 곤한 잠에 떨어져 버렸 다. 이튿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요 위가 질펀하니 한강이었 고 아랫도리가 걸레처럼 척척했으나 부끄러워서 일어날 수도 없었다. 삼십 년을 모시면서 보기를 첨 보겄다. 아마 평생 첨이실 걸……. 어머니 음성이 들려오고 있었다. 저만 첨인 중 알았 더니 아씨두유? 옹점이 대꾸하는 소리도 들려왔다. 나중 안 일 이지만, 어머니에게 평생 처음으로 보인 일이란 그날 밤에 아버 지가 손수 행한 바의 모두를 말함이었다. 귀로에 한쪽 발을 헛 디뎠던 일도 그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. 아버지의 양말 한 짝이 마당가 우물 도랑물에 젖어 있었다던 것이다. 어쨌든 그날 밤 에 있었던 아버지의 거동은 오랫동안 여러 동네의 큰 화젯거리 였은 줄 안다. 모두들 처음이며 아울러 마지막일 터임을 미루 어 볼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. 그래서 나는 석공의 추억이 일기 시작하면, 내가 즐겨 놀았던 마당으로서보다도 나의 아버지가 평생에 단 한 번 객스럽게 놀아 보신 장소라는 데에 보다 소중 함이 느껴져서 잊지 못해 해 온 사실을 밝혀 두고 싶다. - 이문구, 관촌수필 -